김연명(중앙대 사회복지학과)
복지국가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거센 공격에 맥을 못추던 ‘친복지 진영’이 최근 ‘사회투자국가’라는 새로운 개념을 중심으로 집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실 ‘고전적’ 복지국가에 대한 신자유주의 진영의 비판은 과장된 측면이 많았지만 이미 경제정책과 사회정책 담론에서 헤게모니를 상실한 유럽 좌파들의 기존 복지국가 방어 논리는 정치적으로 호소력을 갖기 어려웠다. 더욱이 저성장과 세계화의 진전, 지식기반 경제의 도래, 그리고 가족기능의 약화와 저출산·고령화의 진행 등 새로운 경제사회 구조의 형성은 고전적 복지국가의 경제, 사회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광범위한 회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군의 학자와 정치세력들이 새로운 대안 찾기 작업에 착수했는데 이른바 ‘제3의 길’이 가장 잘 알려진 노선이다. 사회투자국가 역시 ‘제3의 길’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앤서니 기든스가 담론 수준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최근에는 몇몇 학자들과 유럽연합, 경제협력개발기구 같은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90년대 중반 이후 유럽과 북미지역에서 새로운 흐름으로 정착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나 ‘근로연계복지’ 등의 의의를 적극 수용하는 동시에 기존 사회복지정책의 투자적 기능을 새롭게 조명하면서 고전적 복지국가 및 신자유주의 노선과 구별되는 모델로서의 사회투자국가의 가능성이 적극적으로 개진되고 있다.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관계에 대한 인식에서 사회투자국가론은 신자유주의와 뚜렷이 구분된다. 신자유주의 노선이 사회복지 지출을 비생산적이고 경제에 부담을 주는 상충적 관계로 인식하지만 사회투자국가에서는 사회정책의 생산적 기능이 강조되고 경제성장과 사회정책을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인식한다. 현대 경제, 특히 지식기반 경제가 잘 작동하려면 교육, 직업훈련, 주거, 의료 등 사회정책의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사회정책의 투자적 기능에 주목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와 고전적 복지국가 노선과 구별되는 사회투자국가론의 새로운 개념화이다. 특히 아동복지나 여성복지에 대한 공공지출은 인적자본의 향상, 미래 빈곤층의 예방, 그리고 여성 노동력의 확보를 통해 미래의 사회적 비용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현재의 경제운용에도 도움을 주는 투자적 기능이 있음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빈민지역의 대규모 재개발도 범죄 예방, 빈민에 대한 기회균등과 사회적 배제를 막기 위한 중요한 사회투자 정책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회투자 전략은 노동시장 정책과 실업, 빈곤 정책의 적극적 연계를 중시한다는 점에서도 기존 모델과 상이하다. 청장년 실업자와 빈민, 그리고 편부모 가정에 현금을 지급하는 고전적 복지국가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 취약계층을 노동시장 안으로 적극적으로 통합하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취약계층의 ‘유급 노동화’ 전략으로 불리는 이 노선은 현금 지급 위주의 기존 복지정책이 취약계층의 복지 의존성을 조장하고 노동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방해한다는 신자유주의의 비판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사회투자국가가 또 하나의 학문적 유행으로 끝날지 아니면 신자유주의적 사회복지 노선을 대체하는 새로운 이론적, 정책적 대안으로 체계화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회투자국가론이 인류가 이룩한 업적 중의 하나인 사회복지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고 더 나아가 경제성장 및 노동시장 정책과의 선순환적 연결고리를 적극적으로 모색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고민에 빠져 있는 한국 사회에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담론이 아닐 수 없다.
* 이 글은 한겨레 2006.10.16자 객원논설위원 칼럼을 통해 발표된 것임을 밝혀 두고자 한다. 필자는 현재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있으며, 최근 발표된 주요 논문으로서는 '사회투자정책과 한국 사회정책의 미래'(한국사회복지학회 학술대회 2007.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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