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김영순 교수가 경제와 사회 2007년 여름호(통권 제 47호)에 게재한 사회투자국가에 대한 비판논문에 대한 반론문으로서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투자국가를 지향하는 영국 노동당정부의 사회투자정책은 김영순 교수의 주장과 달리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둘째, 사회투자국가의 사회투자정책은 복지지출의 축소 수단이 아니다. 영국의 경우, 전체 사회지출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셋째, 사회투자국가담론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해 친복지담론을 약화시키기 보다는, 영국에서 보듯이 국민적 지지 속에 친복지담론의 형성에 도움을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김영순 교수가 대안으로 제시한 ‘적극적 복지국가’와 사회투자국가는 프로그램의 구성상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사회투자국가 건설에 있어 보완적으로 함께 추진해야할 사항들에 대해 논한다.
무릇 비판을 제기하는 사람은 다음 두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하나는 그 비판이 공정하고 정확한가이고, 또 하나는 비판과 함께 신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고프 멀건(Geoff Mulgan, 1998: 85)
I. 서 론
본론에서 다룰 김영순 교수의 비판에 대한 반비판의 핵심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투자국가를 지향하는 영국 노동당정부의 사회투자정책은 김영순 교수의 주장과 달리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둘째, 사회투자국가의 사회투자정책은 복지지출의 축소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영국의 경우 사회지출을 늘이고 있다. 셋째, 사회투자국가담론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해 친복지담론을 약화시키기 보다는, 영국에서 보듯이 국민적 지지 속에 친복지담론의 형성에 도움을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김영순 교수가 대안으로 제시한 ‘적극적 복지국가’와 사회투자국가는 프로그램의 구성상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사회투자국가 건설에 있어 보완적으로 함께 추진해야할 사항들에 대해 논한다.
II. 사회투자국가론의 비판 논리와 반비판
1. 사회투자국가론의 비판 논리
김영순 교수는 “한국에서 사회투자정책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나 “사회투자국가를 우리의 대안적 복지모델로 상정하고 그 담론을 유포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으며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주장한다(84쪽). ‘사회투자정책’은 김교수가 인정하듯이, 저출산.고령화, 가족구조 변화와 여성의 사회진출, 그리고 세계화와 노동시장의 변화 등이 야기하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new social risks)과 새로운 사회적 욕구(new social needs)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친숙해진 유연안정성(flexicurity), 고용가능성(employability), 활성화(activation), 근로연계복지(workfare) 그리고 학습복지(learnfare)라는 개념 하에 추진되는 수많은 정책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사회투자국가’는 이러한 정책을 힘있게 추진하는 국가로 영국노동당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미래복지국가의 모습이다.
이 양자를 구분하여 ‘사회투자정책’은 받아들이고 이를 실천하는 ‘사회투자국가’는 거부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쉽게 납득이 가진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을 인정하고 김교수가 제시한대로 사회투자정책이 아닌, 사회투자국가를 경계해야만 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투자국가론이 실행에 옮겨진 지 10년이 되어가는 영국의 경우 그 성과는 그리 인상적이지 못하[고]....우리가 당면한 극도의 사회적 불안전(social insecurity)과 양극화,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105쪽). 둘째, “활성화에 기반을 둔 사회투자적 접근이 전통적인 소득보장의 ‘대체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복지지출의 축소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 때문이며(95쪽), 셋째, 사회투자국가담론이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우리사회의 친복지국가적 담론을 약화시키고 복지동맹의 형성을 저해하며, 복지국가를 ‘퍼주기 식 복지,’ ‘복지병’의 근원으로 매도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할 위험을 가지고 있다...[따라서] 사회투자국가담론의 정치적 유용성에 대해...동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107쪽). 그렇다면, 위의 비판 논거가 사실에 근거한 공정한 평가인지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2. 반비판 I: 영국 사회투자국가의 사회적 성과는 인상적이지 못한가?
1997년 영국노동당이 집권한 이후 영국에서 나타난 경제사회적 변화를 모두 노동당정부의 공과로 환원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신임총리 브라운(Brown)이 재무장관이던 시절인 2006년 영국하원에서 “[노동당이] 집권하기 전, 영국의 1인당 GDP는 G7국가 중 7번째였던 것이....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의 결과....이제는 미국 다음인 두 번째 고소득국가로 부상하였다”라는 자신감 어린 연설을 행할 정도로 전후 최고의 경제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Financial Times, September 18, 2006, 15면). 사회분야는 어떠한가?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는 사회투자정책 패키지를 전부 평가할 수는 없고, 김영순 교수가 거론한 3가지 항목만(공공보육, 적극적노동시장정책인 뉴딜, 그리고 빈곤과 불평등) 다시 살펴 보자.
첫째, 김영순 교수는 공공보육서비스가 “보육시설의 대부분이 민영인 상태에서 비싼 보육료 문제 때문에 진척이 매우 느리다”고 비판하고 있으나(105쪽), 자료를 곰곰이 살펴보면 주목할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1998년에 노동당정부는 Ten Year Strategy for Childcare, Choice for Parents, the Best Start for Children 계획을 수립하고 꾸준히 보육시설과 보육비 지출을 확대해 왔다. 그 결과, 잉글랜드지역의 경우, 종일제보육시설이 1997년 6,100개에서 2006년 9월 현재 13,600개로 늘어나고, 방과후클럽은 동기간동안 2,600개에서 10,700개로 증가하였다.2) 아동이 있는 가정의 공보육(formal childcare)참여율은 어떠한가? 2001년 31%에서 2004년 41%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방과후클럽 이용률은 동기간 6%에서 12%로 증가하였다. 종일제 보육에 참여하는 아동의 숫자도 3-4세 아동의 경우, 2003년 전국적으로 649,400명이었던 것이 2005년에는 704,200명으로 8%가 증가하였다(Daycare Trust, 2006: 7~8). 김영순교수가 지적하듯이 민간영리보육시설이 다수를 차지하며 보육비용이 비싼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동당정부는 꾸준히 공보육시설을 확충하고 부적격 민간시설은 퇴출시켜, 2001년 민간영리시설(private sector)의 비중이 81%에 달했던 것이 2005년에는 60%로 낮아졌다. 저소득가구는 아동세액공제(Childcare Tax Credit)를 통해 법정보육비의 80%까지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고, 2004년 4월부터는 모든 3~4세 아동들에 대해 무료보육시설이용 혜택을 주기 시작해, 2006년 4월 현재 주당 12.5시간 이용은 무료이며, 2010년부터는 주당 15시간으로 확대될 계획이다. 무료보육시설의 이용률(take-up rates)은 2006년 1월 현재 전체 3세 아동인구의 96%인 538,000명에 달한다. 보육서비스 확대를 위한 정부의 재정지출도 1998/9년 14억파운드에서 2004/5년 43억 파운드, 2007/8년에는 54억파운드(한화로 약 10조 2천6백억원)로 4배가까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Daycare Trust, 2006).
오래전부터 보육을 사회화한 덴마크나 스웨덴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회투자국가의 이념 하에 보육서비스 확대에 나선 영국 노동당정부의 노력과 성과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고 본다. ‘출발선’이 다른 데, 10년 안에 영국을 스웨덴으로 만들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공정한 평가가 아니다.
둘째, 김영순 교수는 “뉴딜(근로연계복지적 요소를 갖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효과는 일차적 표적집단이었던 청년층보다 독신모, 장애인집단에서 두드러졌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초기의 반짝 증가 후 곧 완만해졌다"라고 평하고 있다. 김교수가 근거로 밝힌 아래 <그림1>을 다시 보면, 김교수의 주장이 크게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절대치로 보면 스웨덴(e.g.2004년 청년실업률 17%) 보다도 성적이 우수한 영국 사회투자국가에 대한 비판은 그리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필자가 보기에, 영국노동당정부의 적극적노동시장정책은 지난 10년간 효과적인 경제관리와 맞물려 꾸준하게 성과를 내고 있다고 평하는 것이 사실에 부합한다.
셋째, 김영순 교수는 영국에서 “빈곤문제 해결엔 큰 진전이 없고 불평등은 오히려 증대했다”고 비판한다. 틀린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아래 <표 2>를 보자.
스웨덴을 위시한 비교대상국 모두 1990년대 중반보다 2000년에 이르면 빈곤율이 높아지고 소득불평등은 심해진다. 오히려 영국은 비교적 ‘선방’하는 국가이고 아동빈곤율이 크게 떨어진 거의 유일한 나라이다. 게다가 2006년까지의 최근 변화를 보여주는 <표3>을 보면, 아동빈곤율 뿐 만아니라 전체 빈곤율도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상대빈곤을 기준으로, 1997년 노동당이 집권한 이후 2005-6년 현재 130만명이 빈곤을 벗어나 전체 빈곤율은 3.6%p가 하락하였고, 연금생활자의 빈곤율은 12.1%p, 그리고 아동빈곤율은 4.3%p 하락하였다. 절대빈곤을 기준으로 하면 그 하락율은 더욱 더 눈에 띤다. 전체적으로 490만명이 빈곤을 벗어나 빈곤율이 9.4%p나 하락하였다.3)
3. 반비판 II: 사회투자정책은 소득보장의 ‘대체물’이며 복지지출의 축소수단인가?
아래 <표 4>를 보면, 대처의 보수당정부 시기는 상위소득집단일수록 가구당 가처분소득증가율이 높고 하위집단일수록 소득증가율이 정체되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시대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노동당정부에서는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위집단의 소득증가율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유는 무엇인가? Brewer et. al,(2007: 21-24)은 1997년 노동당집권이후 단행한 조세 및 복지개혁에 주목한다. 근로가능인구의 경우 노동시장참여를 높이고, 최저임금제와 WTC와 같은 근로장려제도의 도입으로 이들의 가처분소득이 증가한 것이다. 게다가 부양아동이 있는 저소득가구에게 아동수당을, 그리고 대표적인 근로무능력자인 노인층에 대해서는 기초연금액을 인상함으로써 이들의 소득증가를 도왔다. 만약 이러한 정책적 쇄신이 없었다면, 2005-6년 0.347인 지니계수는 0.378로 증가했었을 것이라고 이들은 추정한다.
4. 반비판 III: 사회투자국가담론은 친복지담론으로 정치적 유용성이 없는가?
그러나 김영순 교수도 지적하고 있듯이,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볼 때 성장주의와 자유주의적 이념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어, 주류 엘리트들과 일반 국민들에게 전통적인 복지담론보다는 사회투자전략의 호소력이 더 클 것이다. 게다가 전통적인 복지담론을 견지하고 현실화 시켜줄 수 있는 정치·사회세력도 매우 취약하다. 김교수는 “김대중 정부 초기를 달구었던 생산적 복지국가 담론이 가져온 폐해를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지만(109쪽), ‘생산적’이란 형용사가 없었다면, 김대중정부에서 이룩한 복지국가적 성취는 지금보다 낮은 수준이었을 것이다. 물론 김영순 교수가 기껏 50보 전진하기 위해 100보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가둬버리냐고 안타까워하는 것임을 안다. 하지만 복지국가건설을 바라는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 매우 척박하다면, 이 척박한 상황에서도 꽃피울 수 있는 대안을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된다. 그리고 하나둘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어 국민들의 지지를 높여 나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신자유주의에 수용해도 이에 포섭되지 않으면서 복지국가적 이상을 실현해 나가고, 더 나아가 복지담론도 주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점에서 우리처럼 신자유주의와 힘겹게 싸워온 영국 노동당정부의 예는 매우 시사적이다. 아래 인용문을 보자.
블레어정부의 최고의 유산은 특정분야에서 얼마만큼의 사회복지적 개선을 이루어 내었느냐하는 것보다는 논쟁의 성격을 바꾸어 놓은 데 있다. 1980년~1990년대 대처의 보수당 시절처럼 어떤 방식으로 영국복지국가를 해체할 것이냐를 논쟁하기보다는, 오늘날 데이비드 카메론의 보수당은, 어떻게 하면 사회정의, 공공 서비스, 그리고 영국복지국가를 개선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노동당정부와 논쟁을 벌인다(Financial Times, May 2, 2007, 11면).
김영순 교수의 표현대로, 사회투자전략이 ‘멋진 신세계’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 논의되는 그 어떤 대안보다도 저출산고령화, 가족의 해체, 근로빈곤의 확산, 가난의 대물림, 성장잠재력의 저하 등 우리가 처한 문제에 대해 균형잡힌 해답을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김교수가 제안한 대로 소득보장과 사회서비스체계의 확립에 매진하는 적극적 복지국가도 우리사회에 필요하며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복지프로그램의 내용면에서 사회투자국가와 서로 크게 배치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보육, 교육, 장기요양 등 보살핌서비스, 적극적노동시장정책 등 사회서비스체계의 확립은 여성의 노동시장참여를 촉진하고 인적자원의 충전과 개발을 도와주며 아동의 인지발달을 도와줄 것으로 보인다. 소득보장의 구체적인 방법이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영국의 예에서처럼 근로무능력자에게는 보다 탄탄한 기초보장을 그리고 근로유능력자에게는 근로와 숙련형성을 유인하고 가처분소득을 증가시키는 소득보장체계를 갖추면 될 것이다. 단지 복지국가의 건설과정에서, 김영순 교수가 제안한대로 “소득보장을 사회투자적 지출 못지않게 강조해야 하며...모든 복지지출이 생산적이며, 투자적임을 강조”하는 것만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보다는 연금 등 복지프로그램별 지출의 합리화를 선행시키고, 10년 앞을 내다보며 사회투자정책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단계별로 시행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투자정책이 기대하는 인적자원개발 효과가 최대한 발휘되도록 노동시장내 차별을 금지하고, 조세개혁을 통해 근로유인체계와 재정기반을 튼실히 하며, 지역과 산업수준에서 노사정의 합의구조를 구축하여 사회적 합의하에 사회투자정책이 내실있게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김영순 교수가 경제와 사회 2007년 여름호(통권 제 47호)에 게재한 사회투자국가에 대한 비판논문에 대한 반론문으로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한 것임을 밝혀둔다. 필자는 현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로 있으며, 최근 주요논문으로서는 “사회투자국가론과 경제사회적 성과분석: 영국, 스웨덴, 그리고 덴마크의 비교분석과 한국에의 함의”(『시민과 세계』 11호, 2007)가 있다.
2) 반면 시간제 보육시설은 2004년 10,500개소에서 2006년 9월 현재 9,400개로 감소하고 있다. 종일제보육과 방과후클럽의 증가는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를 돕는 정책적 의지에 영향을 받은 결과로 해석할 수 있겠다(박순우, 2007: 53).
3) 상대빈곤기준으로 빈곤율이 하락하지 않는 유일한 집단은 근로연령대에 있는 비부모(non-parents)이다. 이는 국가재정이 무한대가 아닌 상황에서, 사회투자정책의 전략상 혜택의 우선순위에서 하위에 있는 집단이기에 발생하는 결과로 보인다.
4) 영국의 GDP대비 사회보장지출(social protection expenditure)의 추이를 보면, 1998년 26.9%, 2000년 27.0%, 2003년 26.7%로 큰 변화가 없다(European Commission, 2006).
5) 일찍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는 철폐의 대상으로 지목했지만, 19세기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가 가져다준 생산력의 증대는 인류의 자산이며 풍요로운 공산사회로 가는 징검다리로 보았다. 마찬가지로 사회투자국가론자들은 21세기의 ‘시장’이 복지국가의 든든한 물적토대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시장은 규율되어야 한다고 보지만 경쟁시장의 효율과 생산력의 증대를 위해 “시장의 핵심기능은 반드시 보완되고 개선되어야지, 정치적 행위에 의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Blair and Schröder, 1999: 3). 이러한 맥락에서 지나친 고용보호도 시장의 원활한 작동에 장애가 된다고 본다. 이는 고용창출의 저하로 나타나고, 종국에는 노동시장을 내부자(insidenr)와 외부자(outsider)로 양분시켜 후자의 발전 기회에 장벽을 쌓는 사회적 부정의(injustice)를 낳는다고 생각한다(Giddens, 2001: 10). 그리고 지나치게 경직적인 노동시장은 새롭게 노동시장에 진출하고자하는 여성들의 다양한 근로형태에 대한 새로운 욕구(일례로, 일과 가정을 양립시키고자 파트타임을 선호하는 욕구)나 지식기반경제에서 발생하는 노동자들이 새로운 욕구(예를 들어, 새로운 기술 습득을 위해 휴직과 취업을 반복하고자 하는 욕구)를 담아 내지 못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사회투자국가론자들의 ‘시장’에 대한 전향적 관점은 시장력을 제어하여 시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굳게 믿어온 전통좌파적 사고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투자국가담론이 신자유주의에 포획되어 있다고 믿는 근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전향적 태도가 신자유주의자들처럼 자유방임시장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고용보호에 대한 새로운 접근도 노동시장의 탈규제(deregulation)만을 지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사회투자국가담론에서 시장은 공식적·비공식적 제도가 경제주체들간의 협력과 조정을 가능하게 하는 ‘규율된 다원주의(disciplined pluralism)'가 작동하는 시장을 의미한다. 그리고 노동시장은 유연화를 추구하되 적극적노동시장정책과 평생학습체제로 뒷받침되어 근로자 개개인의 고용가능성(employablity)이 높아져 근로자의 안정성이 동시에 보장되는 노동시장을 뜻한다(Giddens, 2003 and 2001).
6) 사회투자국가론에서 강조하는 평등은 실질적인(혹은 적극적인) ‘기회의 평등’이다. 전통적인 친복지주의자와 마찬가지로 사회투자국론자들에게 전통적인 개념의 평등, 즉 ‘결과의 평등’에 대한 이념적 '애착'도 무척 강하다. 그러나 결과의 평등을 달성하기 위해서 취했던 고율의 누진세는 전세계적으로 하향평준화 압력을 받고 있고, 사회복지적 이전지출도 복지의존(dependency)과 노동의 비활성화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고 있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고율의 누진세를 통해 직접적으로 고소득자의 소득을 낮추고 이를 재분배해 평등을 달성하기 보다는, 조금 뒤처진 시민 개개인의 기술과 역량을 강화시켜 노동시장내에서 앞선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적극적인 기회의 평등이 추구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지식기반사회에서 빈곤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저소득가정 아동에 대한 인적자본 개발 투자가 강조되고, 이전지출은 되도록 근로와 연계되도록 설계한다. 김영순 교수는 사회투자정책이 전통적인 소득보장의 대체물로서 복지지출의 축소기제라는 우려를 강하고 갖고 있다. 따라서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투자국가에서 시민의 사회권은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한다(103~4쪽). 하지만, 앞서 영국의 예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는 기우이다. 근로무능력자에 대한 기초보장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단지 근로유능력자에 대해서는 근로를 유지하게끔 사회투자적 관점에서 종전과 다른 형태로(예를 들어, 최저임금제나 EITC 등을 통해) 소득이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앞서도 누누이 지적했지만, 아동기에서부터 중고령이 될 때까지 근로능력을 배양하고 직업을 갖을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투자국가에서 사회권은 위축되기보다는 확대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단지, 시민사회는 권리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공적 덕성(civic virtue)을 가진 자유시민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확대된 사회권에는 그만큼 책임이 부여되야 한다. 근로능력자의 경우 근로나 훈련을 조건으로 급부가 주어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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